B: 나 알바 구했어~
A: 얼마 받기로 했는데?
B: 기간제니깐 뭐 최저임금이겠지
A: 도에서 하는 건지 알아봐 거긴 생활임금기준이야
B: 군이야..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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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급해야 하는 임금의 기준을 정해놓았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모두 최소한으로 살라는 듯이 모든 임금의 기준이 최저임금이 되었다.
그래서 생활임금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주 철학적인 사유로부터 시작한다.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사는 것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인간을 구성하는 아주 다양하고 많은 분석단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그 관계성은 인간다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관계성에 "돈"이 든다.
때문에 최저임금은 인간답게 산다를 완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가깝다.
여기서 착각이 생긴다. 최저임금 정도만 맞춰주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최저임금은 그저 "관계의 준비"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쉴 곳,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초과 노동을 하거나 투잡, 쓰리잡을 한다.
그제서야 시간과 돈을 들여 자기계발을 할 돈이 생긴다.
그래서 노동계는 생활임금이 필요를 주장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관계의 시작"을 보장하는 것이다.
시간을 내서 더 일하지 않더라도 학원을 다니고, 데이트를 하고, 병원을 가고, 보험을 들고......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풍조는 예저녁에 지났건만 법과 정책은 아직 최소한에 머물러 있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주민조례발안법이 제정되었고(기존엔 단체장을 거치게 되어있었으나, 법제정으로 청구인이 직접 의회에 청구할 수 있게 됨),
마침 그 제도를 통해 음성군의회에 주민이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청구했다(2023년 6월, 음성군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위한 주민조례 청구안).
음성군 주민 2,356명이 참여한 조례 청구안은 민의의 직접성, 상징성, 효과성을 담보한 상황으로 의회는 조례 제정으로 마침표를 찍었어야 했다.
그러나 주민의 요청인지 명령인지 구분 못한 못난 지역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의 완성을 짓밟아 버렸다(2024년 7월 18일, 음성군의회 제369회 제1차 본회의).
더욱 우스운 것은 주민들의 청구안을 누더기로 수정한 본인들의 수정안을 본인들이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명과 대책을 요구하는 청구인 대표와 음성군의회의 면담과정에서 회의 진행이 늦어지는 마찰이 있었다.
그리고 한 언론인은 '의회의 성역화'인지, '십자가 밟기의 증거'인지 모를 자기 고백을 했다.
일이 벌어진 맥락과 주민, 주민대표, 대의자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짓밟힌 주민들의 명령보단 회의 개시가 미뤄진 의회의 권력이 더 중요하다고 평하는 것은 기계적 중립을 벗어난 권력을 위한 선전 선동에 가깝다고 느껴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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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언론이 기계적 중립, 방관자적 중계, 전지적 작가 시점의 관찰자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납득 가능한 전후 맥락을 제공하고, 지역정부와 지역주민 간 소통의 창구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길 기대합니다.
이 사안은
1. 주민이 조례를 만들라(는 최소 요건을 만족하여) 명령했고,
2. 제도권은 명령의 수행을 위해 토론하고 검토하여
3.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이 단순한 세 가지 과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주민발의조례가 일 년 이상 긴 시간 걸린 이유가 행정부의 치열한 검토와 의회의 주민의견 수렴, 의원 간 격렬한 토론 때문이 아니라,
전국 기초 지자체 최초라는 부담감에 눈치보고, 어떻게든 뭉개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들을 처리는 해야겠으니, 어쩔 수 없이 수정안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개악안을 상정하여 불만의 소리만 크게 나오지 않게 정리하려다가, 그마저도 생각없이 앉아있던 누군가들에 의해 반대, 기권으로 정리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촌극이 벌어졌기 때문임을 애써 눈 감아가며,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한 사람들의 행동으로 비판하는 것은 ‘본질왜곡이라고 불려질 위험이 있다, 혹은 매우 그렇게 보인다.’고 생각될까 걱정입니다.
이 사안으로 인한 보다 큰 걱정은 지역주민들에게 좌절의 경험을 더해 ‘제도를 통한 개선이 무용하며, 대화와 타협보단 대결과 제압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증편향을 주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저라도 이 사안의 본질은 ‘대의자의 의원놀음이 주권자의 명령을 짓밟은 것’ 임을 기억하기 위하여 이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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