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산등성이에, 붉은 단풍이 서늘한 바람에 흔들린다. 서리 내린 아침, 붉은 잎 위에 흰 서리가 소복이 앉아 쌀쌀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밭머리 흰배추는 고운 흙 속에 몸을 누이고, 장독대 옆에선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진하게 퍼져 올라온다. 할머니는 “젓갈 냄새가 딱 맞구먼,” 하며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을 붉게 물들인다. 부엌에선 장작 타는 소리, 불때는 냄새가 따뜻하게 스며들고 “에구, 요 양념 좀 덜 맵게 해야 쓰겄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김장을 버무린다. 양념은 배추 잎 사이로 스며들고, 젓갈 냄새가 바람에 흩날리며 붉은빛과 흰빛이 어우러지는 그 순간. 뒷마당엔 고소한 불때는 냄새가 감돌고, 김장 독이 하나둘 채워질 때마다 어머니 손끝에선 가을의 마지막 냄새가 퍼져간다.